백제 왕 계보 및 순서 


백제는 BC18년에서 660년까지 678년여간 존재하였던 나라로서


한반도 중부 및 남서부에 위치하며 고구려,신라와 함께


삼국을 이루었던 나라입니다.1대인 온조왕때 위례성에 나라를


정하고 나라이름을 백제라고 명하게되었는데요 백제 왕 계보 및 순서를


차례대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백제 왕 계보 및 순서 그리고 업적


1대는 온조왕 입니다.(재위기간 BC18~AD28):고구려 동명왕의 셋째 아들이며 백제의 시조입니다.


위례성에 나라를 정하고 나라이름을 백제로 명하게 되었으며 (BC18년) 말갈족의 침을을 물리치고


군사력을 바탕으로하여 그 이듬해에 동예와 동맹을 맺습니다.(BC16)





BC11년에는 말갈의 공격을 받게 되나 식량이 떨어져 후퇴하는 적 500명을 격퇴시킵니다.


동예의 국경에 목책을 세우지만 동예가 말갈과 동맹하여 목책을 파괴하고 백제인 100여명을 사살하자


동맹관계를 끊고 다시 목책을 세운뒤 도읍을 위례성에서 한성으로 옮기게 됩니다.BC5년.그 이후 동예가


위례성을 함락시키자 백제는 보복하기 위하여 동예를 공격하게 되나 폭설로 인하여 계획이 좌절되게 되고


맙니다.4년에는 석두와 고목에 성을 쌓고 6년에는 남쪽 경계에 목책을 쌓게 되나 마한의 압박으로 인해


철거합니다.





2대는 다루왕 입니다.(재위기간 28 ~77) : 다루는 지배자라는 뜻을 의미하고 몽골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늘


설이 있습니다.성격이 관대하고 후덕하였으며 위망이 있었다고 전해지네요.


28년 온조왕 서거이후 10년에 즉위하게 됩니다.흉년이 들자 백성의 곤란한 살림을 해결하고자 하는 정책으로


술의 양조를 금지하고 지방을 직접 순시하며 빈민 구호에 힘썼다고 전해지며 (38년),여러 차례 말갈족을


격퇴하였다고 전해 집니다.신라와의 영토전쟁을 진행하여 신라 와산성을 빼앗고 이후 다시 빼앗기게 됩니다.





3대는 기루왕입니다 (재위기간 77~128) : 다루왕의 장남이며 77년 다루왕 서거후 즉위합니다.


신라의 변방을 공격하였으며 이 후 신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화친을 맺었으며 그 이후로는 평화관계를 유지하였다고


전해집니다.말갈의 침입을 받은 신라를 위해 원병을 보냈기도 하였다네요 (125년)





4대는 개루왕입니다 (128~166) : 기루왕의 아들이며 성역이 공손하고 품행이 방정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신라에서 반란을 일으킨 길선이 망명하자 후하게 대접하고 신라에 돌려주지 않게 되는데 이로 인해


신라 정부와 백제가 대립하는 세력이 놀게 되었다고 합니다.그 이후 신라군이 백제 국경을 침략하여 많은 인명피해를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5대는 초고왕 입니다.(166~214) : 개루왕의 장남.소고왕 혹은 속고왕이라고 명하였습니다.


길선 송환문제로 신라와의 계속 된 대립을 일으켰으며 신라,말갈과의 전쟁을 빈번하게 치루었습니다.


6대는 구수왕입니다(214~234) : 초고왕의 장남이며 귀수왕이라고도 명하였으며 7척의 키에 빼어난 풍채를


지녔으며 비범하였다고 전해집니다.말갈의 적현성 침범을 왕과 기병 8백명으로 격퇴하였다고 합니다.216년


신라의 우두진을 공격 5천명을 격파하기도 하였으며 수재와 한재를 대비 제방축소 및 농사를 권하게 하여


민생 안정을 꾀하기도 합니다.





7대는 사반왕입니다 (234) : 구수왕의 장남.사이왕 혹은 사비왕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나이가 어리고 무능하다고 하여 초고왕의 아우였던 고이왕에게 왕위를 빼앗겼다고 전해집니다.




8대는 고이왕입니다 (234~286) :고모왕 혹은 구이왕 이라고도 불려졌으며 초고왕의 아우였습니다.


재위기간중 신라와의 충돌이 잦았으며 고구려가 한나라,낙랑군과의 전쟁을 벌이는 사이 낙랑군 변방을 


공격하기도 하였으며 246년 , 260년에는 유지되어오던 좌우보 체제를 개혁하여 6좌평을 두고 왕명 출납,


창고 관리,형벌 제도,의례 제정,군사 업무를 각각 분담시켜 맡게 하였으며 16품의 관등 체계를 정비 하고 


관직 위계에 맞춘 복장제를 마련하기도 하였습니다.엄격한 법력으로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고 지배체제 정비를 통해


왕권을 강화시키기도 하였습니다.이는 고이왕 서거후 백제 멸망시기까지 4백년 동안 백제 기본 제도로 유지


되었다고 하네요.





9대는 첵계왕입니다.(286~298)고이왕의 아들이며 책찬왕 혹은 청계왕으로 불리어졌으며 체격이 크고


기품과 의지가 걸출한 인물로 전해집니다.수도였던 위례성을 수리하였고 고구려 침공을 대비해 아차성및


사성을 수축하기도 하였습니다.


10대는 분서왕입니다.(298~304) : 첵계왕의 장남이며 외모가 뛰어나고 머리가 총명하여 보왕으로부터


총애를 받았던 인물입니다.304년에 낙랑군 서쪽 현을 공격하고 점령한뒤 그 해 낙랑군 태수가 보낸


자객으로부터 살해되게 됩니다.





11대는 비류왕입니다.(304~344) : 구수왕의 차남이며 사반왕의 동생이였습니다.


힘이 세고 활을 잘 다루었으며 성품이 인자하고 너그러웠다고 합니다.


12대는 계왕입니다.(344~346) : 분서왕의 장남이며 나이가 어려 사바왕의 동생인 비류왕이 왕위에 오른뒤


그가 죽자 즉위하였습니다.자질이 강직하고 용감하였으며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하였다고 전해집니다.


비류왕의 41년간의 재위기간으로 인하여 늦게 재위한 까닭에 그는 즉위 3년뒤 사망하게 됩니다.


13대는 근초고왕입니다 (346~375) : 비류왕의 차남.초고왕 혹은 조고왕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4세기 중반


백제를 부흥시킨 왕으로 유명합니다.총명하고 체격이 크고 우람하였으며 둘째왕임에도 차기 왕으로 지복


받게 됩니다.





14.근구수왕(375~384) : 근초고왕의 아들.태자 시절부터 왕을 도와 정복활동을 벌였으며 고구려의 평양성을


침공하는등의 국력 신장에 힘썼으며 중국 일본과 국교를 맺고 중국의 제반 문물을 일본에 전파하기도 하였습니다.


15.침류왕 (384~385) : 근구수왕의 맏아들.불교 공인 및 중앙 집권 체제를 사상적으로 뒷받침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16.진사왕 (385~392) 근구수왕 차남 .성품이 강인하고 총명하였으며 지략에도 뛰어났다고 전해집니다.


17.아신왕(392~405) : 침류왕 맏아들 아화왕 혹은 아방왕으로 불리었으며 부왕 서거후 나이가 어려 숙부인 진사왕이


즉위한뒤 진사왕이 8년후 서거하자 그 뒤로 왕이를 이었습니다.





18.전지왕 (405~420) : 아신왕 아들이며 진지왕 으로도 불리었습니다.


19.구이신왕(420~427) : 송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긴밀한 관계 유지에 힘썼으며 이는 고구려와 북조의 동맹관계를


대비한걸로 파악됩니다.


20.비유왕 (427~454) :구이신왕 장남이며 외모가 수려하고 언변이 뛰어났다고 전해집니다.4부 순시 및 가난한 백성


구제에 힘썼으며 428년 ,신라와 나제동맹 체결을 맺고 왜와의 관계도 잘 정립하여 백제위기극복에 힘썼다고 합니다.


21대는 개로왕 입니다.(455~475) : 이름은 경사 , 여경으로 불리었으며 근개루왕이라고도 하였습니다.바둑을 매우


잘 두었다고 하네요.





22대는 문주왕 (475~477)입니다 : 개로왕의 아들로서 즉위 전 부왕을 도와 상좌평으로 국정을 보살폈다고 합니다.


성품이 유하여 결단력이 부족하였으나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또한 그를 매우 존경하였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3대는 삼근왕 (477~479) 입니다. : 문주왕의 맏아들로서 임걸 혹은 삼걸왕으로도 불리었습니다.


13세에 즉위하여 부왕을 죽인자인 해구에게 정사 일체를 일임합니다.478년 해구의 반란을 격살하게 됩니다.


24대는 동성왕 (479~501)입니다 : 문주왕의 아우였던 좌평 곤지의 아들이며 모대,마제,마모,여대등의 이름이 있습니다.


즉위기간에 백제 사회가 안정되어 국력을 회복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백제 혼란 수습에 많은 업적을 남겼으나 


말기에 이르러 향락에 빠져 살고 정치를 돌보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501년 사냥중 폭설을 만나 근처에 머무르던중


왕의 정책에 반발을 하던 위사좌평 백가에게 죽음을 당했다고 전해집니다.





25대는 무령왕(501~523)입니다 : 동성왕의 차남이며 융,사마라는 이름과 무령이라는 시호를 가졌습니다.


키가 크고 외모가 수려하였으며 인자하고 관대한 성품을 지녔다고 합니다.


금강유역 ,호남평야 개발을 위해 수리시설을 확충하였으며 귀농정책을 실시하여 유민을 정착시킴으로서 농업 노동력을


확보 조세 기반 마련을 하게 됩니다.무령왕릉으로부터 수많은 부장품이 발굴되어 백제 문화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쓰이고 있습니다.



26대는 성왕(523~554)입니다 : 이름은 명농이며 무령왕과 더불어 백제의 영주라고 불리는 왕입니다.


27대는 위덕왕(554~598)입니다 : 성왕의 장남이며 태자시절부터 성왕을 보필하여 


국정에 참여하였으며 신라가 동맹을 어기자신라 정벌론을 펼쳤다고 합니다.



28대는 혜왕(598~599)입니다 : 위덕왕의 동생이자 성왕의 차남이였으며 헌왕이라고도 불리었습니다.


즉위기간중 이미 나라의 힘이 약화되었 사회 내부 문제가 곪고 있었다고 합니다.황해 무역기지를 신라와 고구려에 빼앗기고


일본과 중국등의 경제 활동무대를 잃게 되면서 귀족들또한 백제 내부로 한정되어 있는 땅과 권력에 욕심을 내게 되는 현상이


생기게 되고 이로인해 내분도 심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29대는 법왕(599~600)입니다 : 혜공왕의 맏아들이였습니다.특별한 업적은 없으며 불교를 매우 숭상하여 살생을 금기하고


사냥도구를 수거하고 민가가 기르는 매를 방생하게 하였다고 하네요.재위기간이 불과 2년에 불과하네요.





30대는 무왕 (600~641) 입니다. : 법왕의 아들이였으며 삼국유사 무왕열전을 보게 되면 강가에 살던 과부인


 무왕의 어머니가 검은용과 통정하여 낳은 아들이  재주가 매우 뛰어나고 용기가 있어 그가 백제의 


왕위에 오르게 되고 무왕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31대는 의자왕 (641~660) 입니다 : 무왕의 맏아들이였으며 효성과 형제애가 지극하여서 해동증자로도 불리였다고 합니다.


신라를 공격하여 40여개의 성을 빼아앗으며 대야성을 함락시키는등 신라에 많은 타격을 입히기도 하였습니다.642년


고구려와 화친한뒤 당항성을 빼앗고 신라의 당나라 방문로를 막는 등 신라 견제를 하였습니다.643년


당 태종이 고구려 침략을 위해 원군을 신라에 요청하자 의자왕이 그 때를 노려 649년 신라의 7성을 공략하였으나 


오히려 김유신으로부터 역습을 당하게 됩니다.그 이후 백제가 이를 다시 빼앗았으며 고구려와 함께 신라의 성 30여개를


빼앗습니다.655년  신라가 나당연합군으로 백제를 협공 660년 하자 의자왕은 기벌포에 기병 2만을 보내었으나 전멸하게


 되고 탄현에 계백장군을 5천명의 군사와 함께 보내 네 번을 승리하지만 결국 전멸하여 백제 방어선이 모두 무너지게 됩니다.


수도였던 사비성이 포위되자 웅진성으로 태좌와 함께 피난하였으나 웅진성 방령 예식의 쿠데타로 인해 항복이 진행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그 후 왕자들과 대신을 포함하여 백성 만 이천여명과 함께 당나라로 압송된뒤 그해 병으로 사망하였다고 하네요.





스스로 백제 역사에 관심이 많아 많은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한 글이니 부족한 점이 많을것 같네요.


혹시라도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수정 부탁드립니다.~


이상으로 백제 왕 계보 및 순서 , 업적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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