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역사 인물중에 하나인 태종 이방원 가계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영화 <관상>,드라마<육룡이 나르샤>등을


통해 재조명되기도 하는데요 고려의 변방 무장세력인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난 태종 이방원.이방원 가계도를 통해 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


겠습니다.







이방원


이방원은 이성계의 첫번째 부인 신의왕후 한씨의 다섯번째 아들로 태어나 가문을 이어갈 왕위를


계승하기에는 무리가 따랐습니다.핵심층의 자제가 아니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는 오히려 자유롭고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어렸을적부터 학문을 익혔으며 고려말 우왕 9년 1383년에 17세 과거


문과에 급제를 한 수재라고 하네요.




그 이후 5년후 아버지인 이성계가 정권을 장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세로운 왕조건립에 지지부진한 면을


보이자 고려를 정리하고 새롭게 왕조를 세우자고 의견을 주장하게 되고 적대세력이 된 온건개혁파의


정몽주와 그 세력을 없애는데 앞장서게 됩니다.이러한 이방원의 노력으로 인해 이성계는 왕위에 오르게 되고


조선왕조가 세워지게 됩니다.물론 조선왕조 건립의 일등공신은 이방원이였습니다.





제 1 차 왕자의 난


방원(芳遠)의 난 혹은 정도전(鄭道傳)의 난으로 불리기도 하는 제 1차 왕자의 난은 조선 개국에 공이 크고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 뒤에도 신임이 두터웠던 창업공신 정도전 일파와 그에 못지 않은 공을 세운


태조의 다섯번째 왕자 방원 일파 사이의 권력다툼에서 발생하게 됩니다.





태조 즉위 후 세자 책봉 문제가생기자 태조는 계비 강씨의 뜻에 따라서 태조의 제 8왕자인 방석을 세자로 삼게되는데 


이는 왕권보다는 신권이 더 강해야 한다는 신권중심 왕조를 주장한 정도전과 둘째 부인 신덕왕후 강씨가 힘을 합한걸로 


보여집니다.정도전은 왕권에 대한 야망을 보인 이방원보다 자신의 사상인 신권의 생각을 주입하기 


쉬운 방석을 왕으로 올리고 싶어했었기 때문입니다.



정도전


하지만 이러한 시도로 인해 이방원과 첫째 부인인 신의황후의 아들들을 분노하게 만들게 됩니다.조선 건국 초기에는 왕자들도 사병을 


거느릴 수 있었는데정도전이 방석을 제외한 다른 왕자들의 정치 개입과 사병을 거느릴수 없게 하자 이방원은 결국 제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로인하여 세자 방석을 폐출한뒤 귀양보내는 도중 형제인 방번까지 사살하고 정도전등을 불의에 습격하여 모두 죽이


고 남은 신효생등 조선왕조 건립을 도운 개국공신들까지 죽이게 됩니다.




태종 이방원 가계도 



이방원 가계도


제 2 차 왕자의 난


정권을 잡게된 이방원은 자신이 아닌 둘째 형 이방과를 왕위에 앉히게 되는데 이는 제 1차 왕자의 난에서


자신의 형제와 개국공신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왕위를 차지하게 되면 받게될 세상의 비난을 피하기 위한


지략이였습니다.자신이 세자로 추천한 이방과는 이미 왕위는 자신의 자리가 아님을 알고 이방원에게


모든것을 일임한뒤 유유자적한 삶을 살게됩니다.





이러한 변란으로 인해 두 아들과 사위,자신의 벗이자 신하였던 정도전등을 잃고 크게 상심한뒤 1398년


왕위를 세자인 방과(정종)에게 물려주고 고향인 함흥으로 떠나게 됩니다.이러한 와중에 이방원의 윗형인


넷째 이방간이 왕위에 대한 야욕을 품고 제 1 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을 도와 공을 세웠으나 그 공로를 인정


받지 못하고 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여 결국 귀양까지 다녀와야 했던 박포와 결탁하여 이방원을 공격하게되나


이미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이방원이 쉽게 이방간의 공격을 막아내고 형 이방간을 귀양보내고 박포를 처형합니다.


그리고 이방원이 바로 왕위를 물려받게 됩니다.



정몽주


조선의 왕위에 오른 이방원은 자신이 꿈꾸던 조선 왕조 건립에 사력을 다하기 시작하게 됩니다.왕권강화를 위해


일체의 사병을 두는걸 금지하고 중앙군에 흡수시키는 작업을 합니다.고려의 잔재 척결,서얼금고법,호패법 유교강화


및 불교억제에도 앞장서기 시작합니다.또한 자신의 아들 세종의 왕권강화를 위해 조선 건립에 혁혁한 공을세운


공신들을 척결하는데 힘을 썼으며 자신의 왕위 계승을 도운 장인,외척 세력도 가감없이 척결하게 됩니다.


또한 태종 이방원은 왕권강화 이후 벼슬 체계 정리 및 신문고를 세워 백성들의 민심을 항상 들으려 하였으며 


민생 안정에 몰두하여 조선 전성기의 기틀을 마련하게 됩니다.





17년의 재위기간 동안 왕권강화 및 조선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노력하였으며 셋째 아들인 세종에게 1418년 왕위를


물려주게됩니다.그 이후에도 왕권 강화를 위해 세종의 부인 소현왕후의 아버지인 심온을 이유가 없이 숙청을


하는등 왕권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여지를 없애려는 이방원의 권력 욕을 볼 수 있습니다.



정도전 한성부지도


그 이후 태상왕에 있으며 세종의 왕권을 강화시켜 주려 했었던 이방원은 56세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자신의 왕위에 대한 욕심으로 1,2차 왕자의 난을 통해 형제와 개국공신까지 살해하여 왕에 오르는


잔혹한 인물로 묘사될 수 있으나 다른 이면에는 조선 왕조의 왕권강화 및 유교 문화의 큰 기틀을 잡은 위대한


인물로도 역사는 기록되어있습니다.세종 대왕 역시도 태종이 다져놓은 기반으로 인해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었음은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이렇게해서 오늘은 이방원 가계도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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